■ 활동명 : 책 읽는 풍경 9월 모임
■ 일 시 : 2025년 9월 2일(화) 16:30~21:00
■ 장 소 : 건강책방 일일호일, 정통코다리 및 인근
■ 참가자 : 강성자 회장, 강옥순 고문, 임영신, 마정숙, 차은경, 김기수
■ 이야기 나눈 주요내용(지니의 질문)
1. 전체적인 느낌, 와닿는 문장은?
2. 책을 읽다가 소환된 기억의 한 조각!
3. 내게 있었던 앙리 할아버지, 혹은 내가 그런 할아버지가 되어 주었던 경험
4. 52명의 작가나 그림 중 픽한 그림이나 화가가 있다면?
지니님이 선정한 도서로 9월을 바쁘게? 맞이했다. 신간이라 도서관에도 없고, 두껍기도 해서 혹시 불편하게 한 건 아닌지 죄송하다는 우리의 지니는 소설 속 52명 작가의 그림, 관련 글, 기사 내용을 3회에 걸쳐 자료를 올려서 풍성한 도움을 주었다.
강옥순 고문의 전체적인 느낌을 소개하면서, 엘리의 서평문을 소개한다.
소설의 옷을 입은 인문예술 서적이다. 미술사학자가 쓴 글이라 그림에 대한 설명이 전문적이고 세밀하다. 또한 미술책에서 흔히 볼 수 없던 작품들을 폭넓게 소개했다. 프랑스 작품의 비중이 커서 작품과 아울러 프랑스 역사와 인물에 대해 많은 공부가 되었다.
■ 2025. 10월 일정 : 지니가 52명 작가 중 픽한 '장 미셀 바스키아' 특별 전시회 관람 (2일 예정)
2025년 09월 02일 책읽는 풍경_엘리
도서 : 『모나의 눈』 (2025년)
by 토마 슐레세/ 위효정 옮김
<프롤로그>
‘일주일에 한 번, 한결같이, 그는 모나의 손을 잡고 미술관으로 가 작품 하나를, 단 하나의 작품만을 바라보게 할 것이다. 처음에는 색과 선이 펼쳐내는 무한한 진미가 손녀의 마음을 꿰뚫을 수 있도록 말없이 오래 바라보리라. 그런 뒤에는 시각적 희열의 단계를 지나 예술가들이 어떻게 우리에게 삶에 대해 말해 주는지, 예술가들이 얼마나 삶을 빛나게 해주는지 이해할 수 있도록 말로 풀어내리라. (.............) 앙리가 좋아하는 것은 작품들이 지닌 불꽃같은 성질이었다. “예술은 불꽃놀이 기술, 아니면 헛바람이야.” 그는 작품 전체를 통해서건 하나의 디테일을 통해서건, 한 폭의 그림, 한 점의 조각, 한 장의 사진이 존재의 감각을 부추길 수 있다는 사실을 좋아했다.’ (『모나의 눈』 프롤로그 P.31)
<에필로그>
‘...사실 유년기의 가르침이라 바로 이것, 상실이었다. 유년기 자체의 상실부터가 그렇다. 유년기를 잃어버리면서 유년기가 무엇이었는지 배우고, 그러면서 모든 것을 항시적으로 잃을 것임을 배운다. 잃는다는 것이 살아 있다는 감각의, 강렬한 존재감의 필수불가결한 조건임을 배운다. 흔히 성장이라 획득한 것을 쌓아가는 일이라고 여겨진다. 경험, 지식, 물질의 획득. 하지만 그건 허상이다. 성장은 상실이다. 살아간다는 것, 그건 삶의 상실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살아간다는 건 매초 매분 삶에게 작별을 고할 줄 알게 되는 일이다...’ ( 『모나의 눈』 에필로그 P.603~604)
“오, 하비.....이 모든 게, 또 저편의 모든 것이, 너무 아름다워요.”(P.607)
1. 그림 애호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그림을 좋아하고 먼 갤러리도 마다하지 않고 찾아다니는 한 지인이 있다. 그림들로 채워진 그의 집은 작은 갤러리 같기도 하다. 그에게 한 번은 어떤 기준으로, 어떤 그림을 사는가라고 물어본 적이 있다. “스토리가 있는 그림이죠.” 단번에 답이 나왔다. 그러면서 자신이 고른 그림 하나를 가리키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북유럽에서 볼 수 있는 벽돌집들의 지붕이 내려다보이는 높은 언덕에 벤치가 놓여있고 모자를 쓴 두 여인이 그 벤치에 나란히 앉아있는데 그림을 보는 사람은 그녀들의 뒷모습만 볼 수 있을 뿐이다. 언덕 아래 펼쳐져있는 풍경을 바라보며 두 여인은 무언가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 같다.』
“두 사람은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걸까? 여행자일까. 현지인인데 산책 중인걸까. 북유럽의 어디쯤 일까?...” 등등의 상상을 하게 만드는 그림을 좋아한다고.
2. 얼마 전 작고한 서경식(1951~2024) 교수는 <소년의 눈물>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이후로 그의 저서가 출간되는 대로 거의 모두 사 모을 정도로 그의 저작에 빠져 있었다. 특히 <나의 서양 미술 순례>는 내가 그림에 관심을 갖고 그림 전시회나 갤러리를 찾아가게 만든 중요한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여행길에 무심코 들른 미술관이나 성당에서 갑자기 무엇에 얻어맞은 것처럼 발길이 얼어붙는 경우가 있다. 한 장의 그림, 한 덩어리 조각상이 시공을 초월해서 사람을 붙들고 놓아주지 않는 마력을 간직하고 있는 경우가 있다.’ (『나의 서양미술 순례』 p.18)
나도 그런 그림을 맞닥뜨릴 수 있을까. 그런 그림을 하나라도 만나고 싶다는 마음을 아직도 갖고 있다.
그림은 사람의 무의식을 담은 것, ‘자신의 경험을 보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일까. 누군가는 그림 앞에서 엉엉 울기도 했다고 한다.
우연히 보게 된 한 점의 그림 앞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거나 숨막힐 정도로 압도당하는 광경을 상상한다. 그런 그림을 꼭 만나기를!
3. 그림들
1. 프란스 할스 <보헤미안 여인>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을 존중하라
2. 르네 마그리트 <붉은 모델> 네 무의식에 귀를 기울여라
3. 폴 세잔 <생트빅투아르산> 와라, 싸워라, 이름을 새겨라, 버텨라
4. 빈 센트 반 고흐 <오베르의 교회> 현기증을 정착시켜라
5. 로베르트 캄핀 <부인상> 1430 서경식 <나의 서양 미술 순례>중에서
1) 프란스 할스 <보헤미안 여인> 1626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을 존중하라
그다지 크지 않은 화폭의 여인 초상화였다. 세로 길이가 가로보다 살짝 길었으나 거의 정사각형에 가까웠다. 어느 갈색 머리 여인의 풍만한, 과하게 뚱뚱하진 않은 상반신 모습이 오른쪽을 향해 4분의 3 각도로 그려져 있었다. 도도록한 눈꺼풀이 취기와 즐거움으로 내려앉아 반쯤 감긴 채, 여인은 윗 치열을 드러내며 미소 짓고 있었다. 동공의 방향을 미뤄 짐작하건대 화면 바깥에 있는 뭔가를 재미있어 하는 것 같았다. 약간 통통한 여인의 얼굴에서 발그레해진 뺨이 눈에 띄었다. 화가가 두툼한 붓터치로 강조한 다른 곳의 피부는 꽤 희고 탄탄해서 머리카락의 색깔과 대비를 이뤘다. 머리띠를 했지만 무성한 머리숱이 흐트러진 채 등까지 흘러내려 난발이 되어 있었는데, 그것이 모델의 민중적, 농민적 성격을 강조했다. 조여져 터질듯한 가슴도 있었다. 하얀 셔츠의 파인 앞섶에 두 가슴의 곡선이 서로 바 짝 붙은 채 불룩하게 솟아 있었고, 그 셔츠 위로는 산호색 일복을 겹쳐 입었다. 후경에는 온통 갈색과 회색으로 칠해진 배경이 있었는데, 몹시도 모호해서 거친 바위라고도, 북쪽 고장의 무거운 하늘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었고, 실상 거기 특별한 요소가 전혀 없기에 관찰자의 주의는 더더욱 저 자유롭고 즐겁고 꾸밈없는 젊은 여인에게로 집중되었다.
2) 르네 마그리트 <붉은 모델> 1935 / 네 무의식에 귀를 기울여라
거의 나란하게 놓은 반장화 한 켤레가 화면 공간의 중심을 차지했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본 4분의 3 각도로 신발 뒤축이 그림 오른쪽에, 발가락이 왼쪽에 오게 그려져 있었다. 그렇다, 신발 앞코가 아니라 발가락인데, 왜냐면 신발이 조금씩 발로 변해갔기 때문이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섬세하고 꼼꼼하게 그려진 고동색 가죽이 주상골 근처에서 하얗고 발그레한, 혈맥이 사뭇 두드러진 피부로 탈바꿈했다. 흠잡을 데 없는 그러데이션 덕분에 물건이 인체의 일부로 변하는 과정이 완벽하게 자연스럽고 실로 그럴싸했다. 반장화와 인체 모두를 진짜처럼 보이게 만드는 디테일도 하나하나 들여다보였다. 신발끈은 위를 향해 가로로 네 차례 매인 뒤 장화 목 윗부분에 이르러서는 풀려 있었고, 진줏빛 케라틴질의 발톱은 약간 길고 끝부분이 다소 지저분했다. 살을 보면서 인간을 떠올리게 되지만, 단 토막난 인간, 유령 인간이었다. 이 대상 전체가 밀착 구도로 담겨 있는 화면은 꽤 음산했고, 석탄빛의 무딘 색조가 지배적이었다. 화폭 세로 방향으로 아래쪽 3분의 1 부분까지는 밤색 자갈투성이 땅바닥이었다. 나머지 3분의 2 부분에는 여기저기 옹이 무늬가 있는 베이지색 나무 울타리 판자 네 개가 땅바닥에서부터 가로로 잇대어져 있었다.
"다른 사람이 너한테 느꼈으면 기대하는 것과 네가 느낀 것이 들어 맞지 않을 때마다 죄송하다고 하는 건 그만둬라. 너에겐 네 마음대로 느낄 자유가 있어.
순진한 시각으로 예술사에 접근하면 창작이란 오로지 아름다운 것을 만들어내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지. 하지만 틀렸어. 회화, 조각, 사진, 문학, 음악, 연극 등은 우리 존재 속 가장 깊이 파묻혀 있는 층들을 뒤흔들고 자극해. 우리의 불안도 그중 하나지.“ (p.456)
3) 폴 세잔 <생트빅투아르산> 1890/ 와라, 싸워라, 이름을 새겨라, 버텨라
지중해 연안 분위기가 물씬 풍겨나는 가운데, 거대한 산봉우리가 한복판에 불룩 솟아 있는 광활한 풍경이었다. 시점 구실을 하는 테라스에서부터 첫번째 근경에는 소나무들이, 그 뒤에는 대지가, 마지막으로 투명한 하늘 아래 땅에서부터 솟아난 것처럼 보이는 산맥이 화폭에 배치되어 있었다. 붓 터치는 황토색, 초록색, 파란색 등의 색깔 가닥으로 이뤄진 부분들을 서로 접붙이며 사방에서 역동성을 띠었고 진진하게 명징했다, 화폭 어디에도 그림자는 없는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양감을 느끼게 할 요철이나 급경사면 하나하나가 감미롭게 훈훈한 색조로 채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화폭 왼쪽, 곶 위에 선 것 같은 느낌을 자아내는 테라스 가장자리 바로 뒤에는 커다란 소나무가 잡목 숲 위로 솟아 있었다. 나무와 숲은 모두 위로 솟구친 터치로 그려졌고, 주로 초록색 계열이지만 청색도 섞여 있었다. 우거진 잡목 숲은 오른쪽에도 있었는데, 그 숲의 윗부분에서는 솟구친 키 큰 나무 대신 멀리, 초원과 산 사이, 열두 개의 아치로 이뤄진 수도교의 존재가 눈에 띄었다. 탁 트인 화폭 중앙에는 시골 땅이 펼쳐져 있었다. 희미하나마 인간의 손길이 느껴졌으므로 어쩌면 농지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방목장 혹은 밭은 꽤 기하학적으로 분할되어 있었다. 가로로 그은 붓질이 많았고, 집들을 나타내는 각지고 기하학적인 형상들도 많았다. 풀의 색조에 노란색 계열의 색깔들이 뒤섞였고 가끔은 더 붉은빛을 띠는 색조가 끼어들어 주위에 완전히 녹아든 듯한 두 지붕의 대략적인 형상을 그려냈다. 마지막으로 산괴가 있었다. 화폭 왼쪽에서 정상까지 능선은 완곡한 상승선을 탔고, 정상에 다다라서는 일종의 고원 지대를 이루며 펼쳐지다가 오른쪽에서 급격하게 내리꽂혔고, 거기에서 움푹 패인 지대로 꺼졌다가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며 화면 바깥, 무한한 프로방스 지방을 향해 흘러갔다.
폴 세잔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화가다. 그림 <생트빅투아르산>을 언어로 저토록 세밀하게 그려낼 수 있다니 놀랍기만 하다.
“그래, 맞아. 세잔만의 눈, 뜨인 그 눈은 모든 걸 보고 싶어했어. 실제로 그의 눈은 너무 집중한 나머지 벌겋게 충혈되어 머리에서 튀어나올 지경이었지. 우주와 그림을 샅샅이 보려는 노력과 강박 때문에 그의 눈은 완전히 탈진 상태였어. 가끔은 말 그대로 짓눌려서, 붓질을 한 번 한 뒤 다음 붓질을 하기까지 20분이 걸릴 때도 있었지. 작업이 며칠에 걸쳐 이어지기도 했어. 생트빅투아르산 앞에서 끝없는 시간 동안 진을 빼고 있는 그를 두고, 침식되는 건 산이 아니라 산을 그리는 세잔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었을 정도야. 그럼에도 이 화가는 집요하게 밀어붙이고, 고집하고, 절대 항복하지 않았지." (p.342)
4) 빈 센트 반 고흐 <오베르의 교회> 1890 / 현기증을 정착시켜라
세로로 긴 화폭의 그날 작품에서는 시골 교회 한 채가 봄철 풀밭 위에 서 있었다. 일종의 뒤집힌 피라미드 모양을 이룬 풀밭의 가장 자리를 따라, 거의 대칭형으로 갈라진 두 개의 길이 교회를 감싸는 모양으로 나 있었다. 눈에 확 띄는 붓질 자국들이 노란색과 밤색, 화창한 낮 시간의 따뜻한 색조들로 오솔길을 채우고 있었다. 교회는 살짝 비낀 방향에서, 단축법이 적용되어 단단히 뭉쳐진 형태로 그려져 있었는데, 잘 보면 교회의 뒷모습, 즉 후진부였다. 그림 맨 왼쪽에는 제실 한 칸의 바깥벽이, 그 오른쪽에는 합각지붕 아래 벽에 붙은 후진부가 보였으며, 이 후진부 오른쪽에 다시 소후진 하나가 딸려 있어 통틀어 세 개의 커다란 창문과 좀더 작은 창문 두 개가 나 있었다. 길마형 종탑, 즉 지붕의 두 경사면이 마주보고 있는 종탑이 후경에서 풍경 전체를 지배했다. 고딕 양식과 로마네스크 양식이 뒤섞인 이 건물을 부각하는 배경의 하늘은 여러 색조의 파란색으로 이뤄져 있었다. 구름이라곤 없는데도 굽이치거나 빙글빙글 도는 터치들이 있어 공기가 무리 지어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을 자아냈다. 어쩌면 폭풍우가 다가오는 것도 같았다. 어쨌든 그림 양쪽 모퉁이가 더 어두운 것을 보건대 밤이 내리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후경의 채색 소용돌이에 호응이라도 하듯이 지붕 능선, 모서리 기둥, 코니스
할 것 없이 건축물의 선들이 모두 너울거리는 듯, 심지어 비틀거리는 듯 보였는데, 마치 이 광경을 바라보는 시선이 취해 있는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교회에 가려지긴 했지만, 나무나 오렌지색 기왓장 등 지평선 부근에 작은 마을이 있다는 표지들을 어렴풋이 알아볼 수 있었다. 거기에 더해 전경에는 치마 차림에 챙 모자를 쓴 농촌 여자의 뒷모습도 있었다. 왼쪽 길을 따라 걸어가는 여자의 실루엣은 두꺼운 윤곽선으로 갈무리되어 있었는데, 실은 그림 전체에 그
윤곽선이 고루 나타났다.
“전혀 그 반대야, 모나야. 광기는 못된 성격과 아무 상관이 없어. 물론 반 고흐가 공격적인 모습을 보일 때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오늘날 의사들이 '공감 과잉'이라고 부르는 것에 가까웠지. 그는 감수성이 너무 예민해서 다른 사람들이 느끼는 것까지 오롯이 느끼는 사람이었어. 마주치는 모든 이를 향해 어마어마한 애정을 발산하곤 했지. 그는 그들과 자신을 하나로 보고, 그들과 형제처럼 지내기를 바랐어. 그림 왼쪽에 있는 농촌 여자의 저 소소한 실루엣에조차 그는 온 영혼을 들이부었을 거야, 확실해. 이에 대해 빈센트가 쓴 기막힌 문장이 있지. 1888년에 자기 동생 테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썼어. '사람들을 사랑 하는 것보다 더 진정으로 예술적인 일은 없다.’ " (p.361)
*반 고흐가 생전에 판매한 작품이 단 한 점뿐이었다.
<나의 서양 미술 순례> 서경식 5) 로베르트 캄핀 <부인상> 1430 |
... 그리고 그들 속에, 거기에만 밝은 빛이 비치고 있는 것같이 무리 중에서 빼어나게 빛나 보이는 작은 초상화가 있었다. 피가 흐르지 않는 자들 가운데 오직 하나 살아있는 사람 같다. 손을 대볼 수가 있다면 살갗을 통해 따스한 체온이 전해져올 것만 같다
"이봐요. 도대체 당신은 누구세요?"
그렇게 말을 걸고 싶어진다.
살아서 숨쉬고 있는 인간에 대해서는 여태껏 품어본 일이 없었던 친근감과 흥미로운 감정이 영혼의 저 깊은 밑바닥에서부터 천천히 번져난다.
주름살 하나 없이 고운 살결로 보면 17, 8세 정도인 듯싶고, 눈꼬리와 입언저리에 담긴 침착성과 의지력을 보아서는 20대 후반일 것 같기도 하다.
도대체 어떤 종류의 여성일까?
그 모습은 수도녀 같으나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수도원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았을 것 같다. 전적으로 상상일 뿐이지만, 읽고 쓸 정도의 교육을 받기 위해서 혹은 그밖의 다른 이유로 잠시 수도원에 몸을 맡기고 있는 유복한 신흥 시민계급의 자녀인지도 모른다.
이상적인 미인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팽글팽글 잘도 움직일 것만 같은 맑디맑은 눈동자, 청결 그 자체인 입술, 뺨의 싱싱한 혈색, 그 모든 것은 참으로 풋풋한 매력이 넘치고 있다. 그 표정은 충분히 경건하지만 심신을 신에게 바쳐 엄격한 계율에 따르는 것을 기쁨으로 여기는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저속에 흐르지는 않으나 서민적인 것에 대한 공감도 갖고 있다. 그녀의 내부에는 인습과 형식주의의 그릇에는 수용하기 어려운 지혜와 생명력의 활발한 운동이 있어서 그것이 신중함에 의해 억제되고는 있으되, 때에 따라서는 장난기 같은 모습으로 얼굴을 드러내기도 하리라. 여기서 내가 보는 것은, 긴 중세기가 끝나려 하는 시대에 걸맞고 또한 플랑드르라는 땅에 어울리는, 극히 조심스럽기는 하되 이미 밝은 세속의 빛에 비춰진 인간의 얼굴이다. 그것이 내 눈에는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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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기 플랑드르 초상화의 약속처럼 되어 있는 예에서 벗어나지 않게 인물은 4분의 3의 정면 각도로 그려지고 배경은 어둡게 칠해져 있다. 자세히 관찰해보면 네 겹으로 접혀진 머릿수건의 주름, 그것을 고정시킨 두 개의 핀, 조금 젖어 있는 눈동자, 눈썹과 입언저리의 음영 같은 것이 극도로 정밀하게 그려져 있다. 이와같은 세부에 대한 집착이야말로 15세기 플랑드르 화가들의 특징이다. 또한 이 그림의 성공비결인 빛나는 발색(色)을 가능케 한 것은 그들이 개발한 유채화(油彩畵)의 기법이다.
그녀는 한갓 그림 속의 인물이 아니라 5백년 전의 플랑드르 지방에서 실제로 생활하며 울고 웃고 했던 인물이다. 보면 볼수록 과연 그랬겠다는 생각밖에 안든다. 리얼한 실재감이란 바로 이런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 시대에는 실제적인 목적으로 초상화가 많이 그려지게 되었고 화가들은 사실적인 솜씨를 서로 경쟁했던 것인데, 이 「부인상」은 철저한 사실의 극치로서 젊은 여성의 내면에 있는 아련한 인간적 기미까지를 그려내는 데 성공하고 있다.
1983년 12월 4일, 최초의 유럽여행을 끝내고 일본을 향한 귀로에 올랐다. 소중히 가져온 「부인상의 도판은 그때 이래로 내 침실 벽에 걸려 있는데, 지금도 가끔 나와 그녀는 5백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대화를 나누고 있다.
4. 마지막 페이지를 읽고 나서 다시 책의 앞날개에 쓰인 저자 <토마 슐레세>에 대한 소개글을 천천히 읽어나갔다. 그의 나이가 궁금해졌다.
https://chatgpt.com/share/68afabc6-c458-800e-8880-412c1734e8ec
챗지피티는 처음에는 모른다고 했다가 두 번째 요청에 답을 주었다.
; 77년생 48세.
그렇게 젊다니 믿기지 않는다고 하자,
”그렇죠 (스마일 이모티콘) 미술사학자나 작가라고 하면 왠지 더 연륜 있는 나이를 떠올리게 되는데, 토마 슐레세는 아직 40대 후반이에요.
게다가 그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이미 아르퉁-베리만 재단 이사, 에콜 폴리테크니크 교수같은 중요한 자리까지 맡고 있고, 대중적으로도 알려진 저서를 내면서 영향력을 넓혀왔죠. 그래서 더 나이가 많아 보인다는 인상을 주는 것 같아요.“
토마 슐레세의 <모나의 눈>은 명화에 관한 일반적인 책들에서 반복되는 진부함과 거리가 먼, 문학과 감성과 지성이 결합된 독특한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토마 슐레세는 예술에 대한 폭넓은 지식과 통찰을 갖춘 작가로서, 형태적 미학을 중심으로 고려하는 미술사의 경향을 지양하고, 예술을 통해 인간의 삶이 더욱 깊고 다채로울 수 있다는 메시지가 담긴 작품 세계를 구축해나가고 있다. ( 책 앞날개 소개글)
결국 자신이 좋아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그림 52점을 소설 기법을 이용해서 자신만의 독창적인 방법으로 소개하고 분석했다고 생각한다. 덕분에 그림에 얽힌 화가의 내면과 뒷 이야기들을 덤으로 얻은 기분이 들었다.
무엇보다도 <프롤로그>에서 밝힌 저자의 결의; ‘예술가들이 얼마나 삶을 빛나게 해주는지 이해할 수 있도록 말로 풀어내리라.’는 충분히 달성되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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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스 할스 <보헤미안 여인> 1626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을 존중하라
(p.86~97)
; 돋보이는 소설적 구성
모나의 가족, 폴과 카미유의 부부싸움, 루브르 박물관 나들이, 할아버지와 손녀, 오르페우스 신화의 절묘한 삽입, 루브르 박물관에서의 관람객과의 조우, 앙리는 손녀, 모나와 나눈 ‘대화의 필름’을 되돌려 봄.
에피소드 1
모나의 부모, 폴과 카미유의 ‘서늘한 폭력 사태’-“물질적인 문제‘에 대한 부부싸움 장면을 목격한 모나의 반응;
”있죠 엄마, 아빠는 언젠가 자기 문제들을 다른 걸로 바꿀 수 있을 거예요. 대단한 이야기를 한 편 만들 수 있죠! 책이나 영화에는 언제나 슬픔과 불행이 있는데 그걸 잘 엮어서 얘기하면 아름다워져요.....“
에피소드 2
건널목에서 할아버지 앙리의 손을 놓고 먼저 뛰어가는 모나에게 앙리가 주의를 주자 모나는 “아, 하비! 충분히 주의하고 있어요! 그리고 저는 매번 돌아서서 하비가 있는지 잘 봐요.” 라고 말한다.
‘돌아보다’라는 단어에서 오르페우스 신화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p.88~89)
에피소드 3
프란스 할스 <보헤미안 여인> 그림 앞에서 ‘보헤미안’에 대한 역사와 그들의 특징, 미래를 점치는 천부적 능력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모나는 바로 자신의 미래에 대해 궁금해한다. “미래요? 어 그럼 하비, 저는요, 저한텐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이 대목에서 앙리는 손녀, 모나의 실명에 대한 불안감을 읽어내고 그 깊은 슬픔을 다음과 같이 토해낸다.
‘가슴이 찢어졌다. 앙리는 심장이 떨어져나가 뱃속 깊은 곳에서 찌그러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그런 순간마다 능히 그는 강철같은 의지를 다지며 다시 생각했다. 혹시라도 암흑이 손녀의 시야를 가리게 된다면, 손녀에 대한 자기 계획이야말로 얼마나 긴급하게 필요한 일인가.’
에피소드 4
15세기 르네상스 이후 초상화의 역사 이야기
17세기 네덜란드에 대한 사회학적 이야기
두툼한 터치라는 회화적 기법
화가 프란스 할스 소개
<보헤미란 여인>에 대한 모나의 생각 =
“.....저 보헤미안 여인이 움직인다는 인상을 받아요. 게다가, 게다가, 돌아보는 것 같고요. ...하비가 얘기해준 오르페우스처럼....”
그림이 주는 메시지 =
이 불완전하고, 갖은 악벽이 있고, 상스럽고, 출신도 수상쩍은 보헤미안 여인이 고귀한 자들, 명망높은 자들과 똑같은 존중을 받을 만하다.
에피소드 5
앙리의 그림에 대한 설명과 모나와 나누는 대화를 귀담아 듣고 있는 젊은 두 남녀.
청년은 앙리와 모나의 관계를 묻고, 앙리는 청년에게 옆에 있는 여자가 그의 애인이냐고 묻는다. 청년이 끼어들어 질문하게 만든 것은 박식한 노인의 풍부하고 깊은 설명이 어린아이에게 전해질 수 있을까라는 의문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
모나의 비범함은 모나의 언어, 독특한 울림이 있는 언어에 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앙리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루브르에서 우연히 마주친 청년처럼 다른 누군가가 모나의 말을 주의깊게 듣고 그 미스터리를 풀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에피소드 6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와 지옥 이야기.
오르페우스가 뒤로 고개를 돌린 그 치명적인 순간을 상상하는 모나;
“하비, 부탁이에요. 어째서 오르페우스가 뒤돌아봤는지 말해줄래요? 너무 멍청하지 뭐예요!”
“모나야, 너도 언젠가는 이해하게 될 거다. 네가 사랑에 빠지는 날이 오면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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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 슐레세가 문학성, 감성, 지성을 모두 갖춘 작가임이 잘 드러나는 챕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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