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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7월의 책 이야기...

일  시 : 202475() 17:30 ~ 22:00         장소 : 노무현시민센터

참가자 : 강성자,강옥순,임영신,마정숙,차은경,김기수

 

지난 6월 책 모임에서 7월의 책 추천 및 진행을 담당할 삐삐님이 우리 이 책으로 할까요?“하며 추천한 도서이다.

센 언니 책인데~~ 영화도 나왔고요“, ”우리 노벨문학상 작품 읽어 보자구요(책 읽는 풍경의 도서 선정 기준의 모습...)

 

2024년도 벌써 절반이 지나고 본격적인 여름을 찐하게 느끼고 있는 즈음,

2022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아니 에르노의 단순한 열정을 만난다.

 

역시 첫 문장부터 열정적이다.

지극히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글을 쓴다는 여류 작가의 일기장을? 그 경험의 글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작가의 표현을 공감하는 문장과 나에게 사치란? 주제로 한 권의 책과 만난 시간이었다.

 

 

2024년 07 05일 책 읽는 풍경_엘리


『단순한 열정』, 아니 에르노 : 10년전의 읽기와 지금, 다시 읽기


1. 10년전의 <단순한 열정>

2. 2024년에 읽는 <단순한 열정>

3. 2024년 '나에게 사치란 무엇일까'


1) 10년전의 <단순한 열정>

 

* 아니 에르노 연보를 보니 1940년생으로 <단순한 열정>은 1991년에 출간되었고, 82세인 2022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2014년 10월 16일 07:55

아니 에르노

 

'어렸을 때 내게 사치라는 것은 모피 코트나 긴 드레스,

혹은 바닷가에 있는 저택 따위를 의미했다.

조금 자라서는 지성적인 삶을 사는 게 사치라고 믿었다.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한 남자, 혹은 한 여자에게 사랑으 열정을 느끼며 사는 것이 바로 사치가 아닐까.'


그렇다면 나에게 사치란? 적절히 선별된 음식을 먹고 함부로 배를 채우지 않으려고 하는것, 

또 나무의 이름에 매혹되고 그들의 몸을 기억하려고 하는 것........

 

 

 책의 마지막 단락에서 나는 조금 놀라 멈추었다. 오래전에 만든 그러나 지금은 가끔씩 들어가 보지만,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블로그의 한 페이지에 이 단락을 인용했기 때문이다. 출처가 '아니 에르노'라고만 기록되어 있어 그녀의 어떤 작품에 나오는 대목인지는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2014년 어느 가을날 아침이었을가. 10월.... 빛은 여름과 다르게 투명하고 가볍게 떨어졌으리. 여름 내 지쳐있던 몸과 마음도 가을빛처럼 한결 경쾌한 상태로 아침을 맞이하고 있지 않았을지. 특이한 것은 그때 '나'는 나무에 매혹되어 있었으리라는 점이다. 나무와 그 나무가 갖고 있는 이름까지도.... 나무의 몸. 한때 숲 속을 산책하며 기이하게 혹은 신기하게 생명을 이어가며 살아낸 고목들을 발견하면 멈춰 서서 사진을 찍어 두곤 했었다. 이 글은 그때쯤 쓴 걱이 아닌가 한다. 그 뒤로 10년 만에 다시 읽는 아니 에르노의 <단순한 열정>. 그 사이에 아니 에르노는 노벨문학상을 거머쥐었다. 블로그에 마지막 단락을 옮겨 적었지만, 몇몇 문장들을 제외하면 처음 읽는 것 같이 새로웠다.

 

 10여 년 전, 늘 그런 식으로 신문의 신간 소개를 통해 흥미를 느껴 책을 구해 읽었겠지만, 혹은 제목에 끌려 읽기 시작했겠지만 무슨 연유였는지 대충 책장을 넘겼던 것 같다. 그런데 마지막 단락에 곶혔겠지. '나에게 사치란 무엇일까'

 

2. 2024년에 읽는 <단순한 열정>


 지금은 아니 에르노의 솔직한 글쓰기에 주목하게 된다. 쓰는 목적... 왜 쓰는지에 대한 사유와 더불어.

 

1) '그 사람은 "당신, 나에 대해 책을 쓰진 않겠지."하고 말했다. 나는 그 사람에 대한 책도, 나에 대한 책도 쓰지 않았다. 단지 그 사람 존재 자체로 인해 내게로 온 단어들을 글로 표현했을 뿐이다. .........이 글은 그 사람이 내게 준 무엇을 드러내 보인 것일 뿐이다.' (p.66)


'단지 그 사람 존재 자체로 인해 내게로 온 단어들을 글로 표현했을 뿐이다.' 아니 에르노의 이 문장은 진실되다. 한 존재가 다가와 건네준 단어들로 글을 쓴다는 것...

 

2) ' ...이 글을 쓰면서 내가 바라는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나는 알고 있다. 글에는 자신이 남겨놓고자 하는 것만 남는 법이다. 그런데도 계속 글을 쓴다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읽힐지도 모른다는 고통을 연장시키는 것과 같다. 하지만 내가 글을 써야 한다는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있는 한, 그런 건 개의치 않는다. 그러나 그 필요선의 극에 다다른 지금, 써놓은 글을 찬찬히 읽어보니, 놀랍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다. .....' (p.59)

 

'나는 슬픔을 가라앉혀주고, 절망밖에 없을 때 희망을 갖게 해주는 방법이란 방법을 다 써보았다. 카드점을 쳐보기도 하고, '그 사람이 전화해주기를, 그 사람이 돌아와주기를'하고 소원을 빌며 오베르 역의 거지에게 10프랑을 주기도 했다. (사실, 글을 쓰는 것도 그런 방법들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p.53)

 

 에르노에게 글을 쓴다는 것은 슬픔을 가라앉혀주고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게 해주는 치유의 한 방법인 것이다.

 

 

3) ' 그런데도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는, 어떤 영화를 볼 것이지 선택하는 문제에서부터 립스틱을 고르는 것에 이르기까지 모든 일이 오로지 한 사람을 향해 이루어졌던 그때에 머물고 싶었기 때문이다. 첫 페이지부터 계속해서 반과거 시제를 쓴 이유는, 끝내고 싶지 앟았던 '삶의 가장 아름다웠던 그 시절'의 영원한 반복을 말하기 위한 것이었다 .(p.52)

 

 에르노는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를 삶의 가장 아름다웠던 시간들을 영원히 반복하면서 그때에 머물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고백한다.

 

4) 이런 이야기들을 숨김없이 털어놓는 것을 나는 조금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글이 쓰이는 때와 그것을 나 혼자서 읽는 때, 그리고 사람들이 그것을 읽는 때는 이미 시간상으로 상당한 차이가 있을 째고, 어쩌면 남들에게 이 글이 읽힐 기회가 절대로 오지 않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남들이 읽게 되기 전에 내가 사고로 죽을 수도 있고, 전쟁이나 혁명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그런 시간상의 차이 때문에 나는 마음놓고 솔직하게 이 글을 쓸 수가 있다. (.............) (그러므로 자기가 겪은 일을 글로 쓰는 사람을 노출증 환자쯤으로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 노출증이란 말은 같은 시간대에 남들에게 자신을 드러내 보이고 싶어하는 병적인 욕망이니까,)  (p.35~36)

 

 '숨김없이 털어놓는 것'의 용기가 '시간상의 차이'에서 나올 수 있다고 말한다.

 

 

3. 2024년 '나에게 사치란 무엇일까'


 10년전 '사치'라 이름 붙인 것들은 아직도 유효하고 매력적으로 보인다.


 '적절히 선별된 음식을 먹고 함부로 배를 채우지 않으려고 하는것.

 또 나무의 이름에 매혹되고 그들의 몸을 기억하려고 하는 것'


 더하여, 지금은
 유모차에 진숙이를 옆에 앉혀두고 카페에 않아 글을 쓰는 것, 사우나실에서 45도의 열탕에 몸을 담그고 마음과 몸을 한껏 이완시키는 것(아주 드물지만 세신사에게 몸을 맡기는 것), '작가'라는 타이틀을 가진 개성있는 주얼리 제작자에게서 반지나 목걸이를 사들이는 것.(길을 가다가 우연하게 사는 경우가 많다. 거의 은제품)

쓰다 보니 리스트가 점점 더 길어져간다.

* 당신에게 '사치'란?   당신이 말할 차례다! .

 

 

■ 8월 계획 : 영화 퍼펙트 데이즈 를 보기로 하다.(8월5일, 씨네큐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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